라이프로그


자괴감 miscellany

선생한테 깨지는거 하루이틀도 아닌데 별나게 굴건 없지만서도, 정말 서러운건 '너 왜 이것도 모르냐..  1년차때 수업은 발로 들었던게냐..  내가 이런 것까지 설명해줘야 하냐..  3년차 리서치 학생이 어째 이모냥이냐..'하는걸 눈빛에서 읽어버렸을 때다.  차라리 이럴땐 말로 그냥 뭐라하면 덜 서러울지도 모르겠다.  카리스마 작렬 선생이 아주 한심한 듯한 눈빛으로 한숨 푹 쉬고 난 뒤 진짜 기초적인걸 다그치듯 열내고 설명해주면, 듣다가도 서러워서 막 울음이 날 것 같다.

선생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도 안좋은게, 이제 이런건 말 안해도 대강 눈빛만 봐도 읽혀지는걸 어떡하냐고..  선생 딴에는 성질나도 꾹 참고 그냥 설명을 해주는건데, 눈빛에 다 드러났어.  이 양반 입에만 필터가 없는게 아니라 눈에도 필터가 없거든.  아둔한 PhD 학생이라도 상처 받는다고...  근데 서러움으로 끝날 것이 자괴감으로까지 이어지는건, 나도 얼굴에 필터가 없거든.  감정이 얼굴에 그냥 다 드러나는데 어떡해..  미팅 내내 얼굴에 '속상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이젠 나만 그런게 아니라 선생도 마찬가지로 말 안해도 대강 낯빛을 보고 읽어버리잖아.  알아 챘어도 그냥 좀 계속 무시하던가..  그랬음 그냥 에이, 오늘 열라 깨빡났네, 하고 끝났을걸..  확인사살은 너무 잔인했어.  모른척 해줄 수도 있잖아.  쿨하고 프로페셔널하게, 개무시.. 해도 되는 일이지.  그냥 멍청한 학생에게 이미 배우고 익혀서 상식이 되어있어야 할 지식을 설명해주면서 짜증날 수도 있지, 나라도 그런 학생에게는 짜증날테니, 이해할 수 있담말야..  그런 쪽팔린걸 확인까지 하며 달래줄 이유는 없지 않냐고..  멍청한 것도 서러운데 그걸 확인시켜버리면 그야말로 콱 어디 처박혀 숨은채로 나오고 싶지 않을만큼 쪽팔리잖아.

T.T miscellany

당분간 우울할 것 같다.  아니, 실은 오늘 아침부터 우울했지만, 그게 그냥 심난한건지 우울한건지 헷갈렸던거다.  지금은 확실해졌다.  심난한건 끝났고, 우울하다.

난 후회하는 일은 별로 없는 편이다.  하고 싶은건 그냥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 순간에 해버리는 기분파이기도 하고, 하고 싶은걸 하지 않고 참는게 세상에서 젤 힘든 별난 인종이라 그렇다.  그럼에도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진짜 격하게 후회스럽기 그지 없다.  지금 딱 그렇다.  그 때 말을 할 걸..  땅을 치고 후회한다.

이렇게 가슴을 치며 후회할 것을, 그땐 대체 왜 아무 말 안했을까.  컴플렉스 덩어리 인간이란, 가끔 어처구니 없는 부분에서 바보같아지곤 한다.  성격 컴플렉스, 무심하고 감수성 제로 극단적 개인주의자, 근데 내가 이런 내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아마 그 순간에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것 같다.  비교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초라해져서 결국엔 자신감을 잃어버리곤 하는 재능에 대한 컴플렉스도 발목을 잡았던 것 같다.  재능 그런거 다 필요없는 문제에서조차 그렇게 소심해질 수 있다니, 정말 생각할수록 짜증나서 돌아버리겠다.  이제는 극복했다고, 완전히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한 외모 컴플렉스까지도, 근데 완전히 아무렇지 않긴 하지만 하필 바로 그 중요한 그 때, 바보같이 굴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결국 난 그냥 스스로 규정한 내 안에 갇혔던거다.  그래서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하고서 뒤늦게 후회하는 소심한 멍충이가 되어버렸다.

이런거 뒤늦게 아무리 생각해봐야 바뀌는건 없다.  그리고 아마 계속 이럴거다.  쭈욱, 죽을때까지 이럴테지.  그래서 우울한거다.  후회스러워서 우울한게 아니라..

잡담 miscellany

어제 할로윈이라고 사람들 불러다가 집에서 파티했다.  파티는 재미있었지만, 숙취와 집 청소가 남아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왔고, 꽤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그 중에 일어난 미묘하게 므흣한, 그러나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지만, 숙취가 가시지 않은 머리속이 복잡하긴 하다.  아니, 머리가 복잡한게 아니라 마음이 복잡한건가.

플메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플메A 방에서 잔 B군은 일어나서 물 마시러 주방에 나왔다.  청소를 거들고 무거운 쓰레기봉지를 내다버려줬다.  예전같으면 내 남친도 아닌데 청소 거들어 달라고 부탁하진 못했을텐데, 술도 덜 깼고, 염치도 가출해서 이젠 그런 것도 안가린다.  건장한 청년 노동력이 눈에 보이는데, 왜 나 혼자 청소를 하겠는가.  설겆이도 시키고, 청소기도 돌려달라 하고, 쓰레기도 부탁하고, 막 부려먹었다.  덕분에 청소 참 쉽게 해치웠다.  ㅡㅡ;

비바람 부는 일요일, 학교에는 가지 않을거다.  근데 해야할 일은 많다.  내일 수업준비도 해야하고, 안선생 미팅할것도 준비를 해야하고...  문제는 집에서는 좀처럼 일에 집중을 못한다는거...  집이란 잠자는 곳, 이 개념이 너무 강하게 박혀서인지, 집에서는 침대늘보.  아주 침대 밖을 나오지 않는다.  오늘의 미션, 침대 탈출!

심경이 복잡할땐 어쨌든 공부가 최고다.  공부는 좀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일종에 mental immunization이라고 해야겠다.

11월 1일.  가을학기가 6주 남았다.  학기 시작할때만 해도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 과연 한 학기만에 끝낼 수 있을지 막막했는데, 시작이 반이라고, 특히나 이론 논문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반은 완성된 셈.  꾸역꾸역 하다보니 11월 말에는 두 번째 페이퍼 대강 뼈대는 나올 듯.  매월 1일은 월간계획 짜는 날, 이번달은 좀 더 빡빡하게 스케쥴을 잡고 있다.  재미있는 프로젝트는 계획이 빡빡하지 않더라도 열심히 하지만, 지금처럼 시큰둥한 프로젝트는 계획이 타이트하지 않으면 쉽게 정신줄 놔버릴 것 같아서 일부러 막 스스로를 쪼고 있는 중이다.  지겨울수록 빨랑 해치우고 끝낸 뒤, 더 재미있는걸 찾아야지.




점심먹고 추가.
창 밖에는 비바람이요, 머그컵 한 가득 뜨끈한 mulled wine이로다.  아싸, 이런 날 집에 있으니 좋구나~  인생 별거 있나, 열라 단순하게 이런걸로 행복해지다니.  작년에는 보졸레누보로 mulled wine 만들곤 했다.  숙성 덜된 포도향이 진하게 남아있고 충분히 달콤한데다가 끓여먹어도 아쉽지 않을만큼 싸니까.  근데 어제 마트에 갔더니 그냥 끓여서 마시기만 하면 되는 mulled wine이 있는게 아닌가.  오렌지, 클로브, 넛맥, 시나몬을 다 따로 사야하니 좀 번거로웠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는거.  단지 컵에 부워서 전자렌지에 따끈하게 데우기만 하면 끝인데, 재료 각각을 따로 사서 넣고 끓이는 것보다 맛도 더 괜찮구나.  이거 아주 물건인데..  게다가 가격은 어찌나 착한지.  위타드가 망한 뒤로 입에 딱 맛는 밀크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는데, 밀크티 대신 이거 마시지 머..  이걸로 월동준비는 끗!  집이든, 연구실이든 쟁여놓고 겨울 내내 마셔댈 예정이다.

아 참..  백만년만에 집에서 점심 해먹으니 좋다.  10월 한달 내내 점심은 스모크치즈+레터스+토마토+돼지슬라이스 샌드위치였거든.  중간에 빵만 베이글에서 치아바타로 바뀌었을 뿐..  집에서 해먹은 점심은, 거하게 한식 이런게 아니라.. 게으름뱅이 메뉴의 대표주자 파스타.  그래도 요리는 요리.  푸슬리 전자렌지에 돌리고, 마늘과 마른고추는 올리브유에 잘 볶아서 푸슬리랑 섞고 소금넣고 끝.  만드는 시간 7분, 먹는 시간 10분, 설겆이 3분.  시작부터 끝까지 20분짜리 점심식사.  그래도 샌드위치만 아니면 다 좋아.  :)  저녁엔 뭐 먹지...???

대장금 너구리 miscellany

안선생: 이것이 무엇이냐?
너구리: truthful report가 가능한 매커니즘의 payment rule이옵니다.
안선생: 의미를 설명해보거라.
너구리: 처음 항은 true type이옵고, 둘째 항목은 virtual valuation으로서 imcomplete information을 고려하여 true type을 리포트했을때의 allocation 확률의 비율로 나타내지는 바, 의미상으로는 베타분포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선생: 오오.. 베타분포?  그것은 어찌 생각해낸게야?
너구리: 그 생긴 모양에서 베타분포의 cdf와 유사한 형태가 보였기에, 베타분포를 떠올렸을 뿐이온데, 어찌 베타분포냐고 물으시면..
안선생: 그래, 네 말이 맞구나.  true type이 1st order statistic이 될 확률이 allocation 확률이니 베타분포와 의미 또한 같아.

ㄲㄲㄲㄲ

오피스메이트 miscellany

작년에 들어온 오피스메이트 중에 아주 싫어하는, 거의 말도 잘 안하는 애가 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얘도 날 싫어하다는걸 알고, 아마 얘도 내가 싫어하는지 알거다.  하지만 무관심으로 공존이 가능했다.  가끔 몇 가지로 부딪히곤 했지만..

처음엔 오피스에 친구들이 찾아와서 놀다 가는걸로 부딪혔다.  나 말고 다른 오피스메이트들은 거의 안나오니까, 얘는 연구실로 친구들 불러서 차마시며 놀더라.  내가 공부를 하건 말건..  처음이라 잘 모르나보다 하고 몇 차례 반복되기에, 연구실에서 다른 사람 불러 노는거 내가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러시아어로 떠드니까 내가 그 내용을 알 리가 없으니 신경 안쓸줄 알았다는거다... ㅡㅡ;;  무슨 얘기하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알아듣고 싶지도 않지만, 그냥 방해가 되어 내 일에 집중을 못하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 후로는 친구들이 찾아와서 연구실에서 놀다 가는 일은 없어졌다.

지난 봄학기와 여름학기, 얘는 학부생 세 명의 private tutoring을 하고 있었다.  "private"이나까, 학교의 공식적인 TA와는 상관없는, 과외선생같은 그런거다.  근데 수업을 함께 쓰는 연구실에서 하는거다.  내가 공부하고 있을때도 말이다.  딴건 몰라도 공부할땐 음악조차 거슬려서 집중을 못하는데, 옆에서 수업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럼 난 공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장소를 찾아보라고 했다.  카페도 있고, 빈 강의실도 있고, 도서관도 있는데, 굳이 연구실에서 내게 방해가 될 필요가 있겠냐고 말이다.  근데 얘는 나보고 도서관으로 가라는거다.  지는 배우러 오는 학생까지 둘이고, 임신해서 몸도 불편하고, 나는 그냥 혼자니까 혼자 책 싸들고 도서관 가는게 편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그래.. 그럴 수 있지..  임산부이니 당연히 배려를 해줘야 하는건데, 그게 얘라서 그렇게 하기 싫었다.  컴퓨터로 해야하는 일도 있고, 싸들고 나가야 하는 책도 많아서 난 그냥 연구실에서 하는게 편하다, 그러니 니가 나가서 수업해라, 라고 해줬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는 나 스스로 좀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어서 더 불편해졌다.

9월 초 문제가 또 있었다.  얘는 연구실에다가 짐을 엄청나게 갖다놨는데, 아기가 곧 태어나게 되어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고 했던거였다.  때마침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오피스 배정 문제로 학과 administrator가 연구실 점검하러 왔다가, 그 엄청난 짐보따리에 기겁하면서, 곧 새로 사람이 들어올테니 짐을 치워달라고 했었다.  항상 연구실에 나오는건 나 혼자니까, 이 얘기를 전해야 하는 것도 나..  아 난 진짜 얘한테 뭔 얘기 하기 참 싫단 말이지..  그리고 며칠 후 얘가 연구실에 나타났을때 admin.이 한 얘기를 그대로 전했다.  짐 치우라고..  얘는 당시 예정일 보름 앞둔 만삭이었는데, "이거 내가 몸이 무거워 다 못치울거 같은데.." 하는거다.  나야 어차피 얘기를 전하기만 하는거니 나한테 그런거 말해봐야 뭐.. 그냥 난 전해주는 것일 뿐이고, 여기가 연구실이지 storage가 아니잖니?! 하고 시큰둥하게 대꾸하고 말았다.  그 날 하루종일 내가 뱉은 말에 좀 괴로웠다.  임산부인데, 조금은 더 배려를 해줬어야 했던건데, 참 무신경했다.  얘가 아니라 다른 만삭의 임산부였더라면 치우는걸 돕겠다고 했겠지, 그렇게 무심하게 말하지는 않았을거다.  그냥 난 얘가 싫었기 때문에 그런거다.

어제는 얘가 아기를 데리고 연구실에 나타났다.  갓난쟁이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프린트하러 연구실에 왔다.  프린트 하는 한 시간 내내 아기는 칭얼댔고, 원래 아기를 싫어하는 나는, 특히나 아기 울음소리에 몹시 불편한 나는, 뭐라 말은 못하고 그냥 읽던 책을 덮고 인터넷질 노닥노닥..  그리고 오늘 아침에 또 아기를 데리고 연구실에 왔다.  처음엔 조용히 자던 아가가 깨서 또 칭얼거리기 시작하자, 난 얘에게 또 가시를 세우고 말았다.  여기가 nursery도 아니고, 아기가 울면 내가 공부하기 힘들지 않겠냐고..  억지로 우는 아기를 달래고 있는 오피스메이트를 보니 또 성질부린거에 괜스레 미안해진다.  공부만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아기까지 키워야 하니 힘들것을, 거기다 대고 애가 운다고 뭐라 하기까지 했으니 얜 진짜 나때문에 속상할꺼다.

내가 얘를 싫어하는건, 얘는 날 참 인정머리 없는 야멸차고 못된 인간이 되게 몰아간다.  본성이 별로 너그럽지 못하고 까칠한 것과는 별개로, 그런걸 드러내고 싶어하진 않는다.  엄청나게 평화로운 일상에서 살고 있으면서 냉정한 면모를 일상에서 드러낼 일이 뭐 있겠는가.  보통은 나조차도 내 이런 좁아터진 구석을 인지하지 못할만큼 스트레스 없이 살고 있다가, 얘만 나타나면 문득문득 이런 모습을 보이는게 싫은거다.  그래서 오늘도 아침부터 자괴감 비슷한걸로 기분 망치고 시작했다.

잡담 miscellany

넷덕후라서 그런건지, 트위터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자꾸 보인다.  그동안 네트워크 공부하면서도 정작 social networking service는 외면하는 사회적 자폐아(ㅡㅡ;)였는데, 막상 네트워크에 속해서 지켜보니 네트워킹의 속성이 좀 더 보인다.  이를테면, 연결수만 power law를 따르는게 아니라, interaction의 빈(심)도도 power law인 듯 보이고, @****, RT 등 누군가와 쌍방의 interaction에 있어서는 the rich get richer, 혼잣말만으로 일방의 interaction 역시 뭔가 일반화해서 말해볼 법 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지켜볼수록 behavioural econ.쪽으로 네트워킹에 대한 주제가 꾸준히 나올 수 있을 것 같은게..  아는만큼 보이고, 보는만큼 알게 된다고, 사회과학도 관찰을 열심히 해야한다.

잡마켓 나간 친구가 하는 말, "매년 쏟아져 나오는 highly qualified PhD candidate은 엄청 많고, 이들이 가질 수 있는 포지션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논문으로는 자리 못잡는다.  quality & quantity 양쪽 다 쟁쟁한 애들이랑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시스템이 아카데미아 잡마켓."  갑자기 대부분의 시간을 멍때리고 지나간 올해가 바보같이 느껴지는게..  위기감 잔뜩 밀려온다.  이렇게 계속 지지부진하다가는 박사 실업자 직행.

그래서 친구 얘기 들어주겠다고 같이 점심먹고 나서는 갑자기 되려 내가 뒤숭숭해졌다.  뭐하고 사는거지?  37개월, 뭐했지?

토요일이 할로윈.  금요일엔 런던 다녀올 생각이니, 이번주 공부는 오늘 저녁과 내일 하루 남았다.  내일 선생이랑 미팅하고 무사히 넘어가면 대강 이번주 미션은 완료.

런던은 지금, 가을이 좋은 것 같다.  겨울엔 본격 비오고 눅눅해서 제일 별로고,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특징이 런던이라는 도시의 특징을 압도해버려서 런던 자체의 느낌은 좀 약하다.  여름은.. 말을 말자.....  나도 이방인이지만,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런던의 한여름이 그리 좋을리 없지.

아, 뒤숭숭해...  나도 이제 내 앞날에 대해 슬슬 뭔가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지금까진 그냥 공부하고 싶으니 했을 뿐이지만, 재벌가의 자식도 아닌데 학위 마치고 직업 없이 그냥 놀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다고 non-academic job을 갖거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니, 1, 2년 후에는 친구 말대로 highly qualified PhD candidate과 논문의 quality & quantity 경쟁을 해야만 한다.  아, 뒤숭숭해...

잡담

카페에서 선생이랑 미팅을 했다.  주문할라고 줄 서있는데 선생은 전화받느라 잠깐 딴짓, 난 별 생각없이 늘 그랬듯 선생님 커피와 시나몬쿠키 두 개, 나 마실 밀크티 사들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울 선생 커피 취향같은건 묻지 않아도 안다.  설탕/밀크 없는 그냥 커피와 시나몬쿠키.  커피 취향만 그런건 아니다.  미팅 하기 전에 어느 정도 깨빡날지 대강 감이 온다.  그래서 요즘엔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막 깨지지는 않는다.  깨질만하면 아예 선생 피해서 도망다니거든.. ㅡㅡ;

난, 이 구물구물하게 낮게 구름이 깔린 날 오후에는 커피보다는 티 마셔줘야 한다.  우유도 넣고, 설탕도 넣고.  입만 빠르게 영국화(Britainised)되는거 아닌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 지금 나에겐 $t_i(\theta_i) = \theta_i-\int^{\theta_i}_0 \frac{e^{F(x)}}{e^{F(\theta_i)}}dx+\delta \int^{\theta_i}_0\frac{3\delta^2 x^2-2\delta x(\delta+2)+2\delta-1}{\delta+2x} \frac{e^{F(x)}}{e^{F(\theta_i)}}dx$ 이게 최선이다.  더는 안되겠어.. ㅜㅜ 근데, 최선을 다했다는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쉽게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는거랑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거랑, 전자가 더 낫다.  결과만능주의의 비정한 세계관이랄까..  근데 제일 자존심 많이 상하는게 바로 열심히 해도 안된다고 자인해야 하는 순간이란걸 안다면, 과연 결과만능주의를 나쁘게만 볼 수 있을까?

아침부터 수업 두 시간 서서 가르치고, 오후엔 진빠지게 선생이랑 미팅했더니 체력이 바닥이다.  아, 힘든 하루 & 저질 체력.  오늘은 특별히 스테미너 충전 보양식을 먹어줘야겠다.  그렇다고 저녁을 뭔가 영양충만하게 만들겠다는게 아니라 (가뜩이나 기운 다 빠졌는데, 요리하느라 또 기운을 빼지는 않을테다!) 그냥 뭔가 고기를, 고기를, 고기를...  멍멍탕이나 장어, 이런걸 먹어줘야 하지만 현실은 통닭구이.

학문적 통합 miscellany

정치학과 친구가 어제밤에 데이터 분석을 도와달라며 찾아왔다.  정치학에 무슨 데이터 분석?!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상과 철학의 논쟁만으로는 정치학이 완전해질 수 없다.  정치학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학문에서는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데,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려면 통계학을 알아야 한다.  같은 이유로 경제학과에서도 굉장히 많은 시간을 통계적 방법론을 가르치는데 할애한다.  정치학과 통계학의 결합은 정치학에서 나오는 이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라고는 말하겠지만, 사실 난 정치학 잘 몰라서..  하지만 적어도 경제학과 수학의 결합은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수학과 정치학만 그런게 아니다.  이 학교의 강점이라면 사회과학에서 활발한 학제간 연구와 통합인데, 사회학-정치학-경제학-법학(인권) 컨소시엄이 이 학교의 간판이다.

정치학과 친구만 정치학과 통계학을 한꺼번에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난 경제학과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은 경제학의 영역 안에 투입되고 있지만, 경제학 외에 다른 영역에도관심의 끈을 놓지는 않고 있다.  사회학 세미나에 들어가보면 사회현상에 대해서 나와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는걸 알게된다.  물리학 저널에서는 종종 내 연구를 진행하면서 맞딱뜨리는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본다.  정치학과에서 다루는집단의 의사결정 문제는 경제학의 큰 관심분야이기도 하기에,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정치학자(엄밀히 말하자면 politicaleconomist)에게 돌아갔다.  학제간 연구를 통해 시각을 넓힐 수도 있고, 기술적으로 더욱 세련된 방법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영역을 넘나들며 교류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굳이 영역의 구분이라는 것조차 이제는 좀 의미가 없는 듯 하다.  학문이라는게 꼭 선을 긋고 나누어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이 주제는 경제학, 이 주제는 수학, 이 주제는 생물학 이렇게 분류하기조차 애매하다.  그냥 탐구의 대상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공부라는건 시간과 노력의 투자이니만큼, 어디까지 타영역을 공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아주 좁은 한 분야에만 정통하기도 쉽지 않으니만큼, 이건 개별 연구자의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자신의 연구범위를 한정해서, 나는 딱 이 테두리 안에서만 공부할테야,라고 한다면 사실 깊이 들어가는데 한계가 있다는걸 알기 때문에, 대부분 학자들은 굉장히 오픈마인드다.  필요하면 배워야 하는거고, 내 연구주제를 더 잘 연구하기 위하여 다른 주제도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면 기꺼이 하는 사람들이 진짜 진지하게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어디까지 타영역을 공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 답이 있다.  "필요하면 다 한다"는게 답.

가끔 사상의 빈곤을 지적하며 경제학이 수학 일변도로 치우치는걸 개탄하는 목소리를 듣곤 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만나온 경제학자들은 그런 비판에 관심도 없다.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보면 이게 경제학 논문이냐 수학 논문이냐 따지고 들만한 논문일지라도, 아이디어(그들이 말하는 사상과 철학에 해당한다) 없는 논문은 학자들 사이에서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철학 없는 이론은 없고, 사상 없는 논문도 없다.  다만 비판을 하는 사람들 수준에서 그 철학과 사상을 담고 있는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수학적으로 깔끔하게 사상을 논증할 수 있지만,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그 수학이 담고 있는 논증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진입장벽이라 투덜댈 뿐이다.  아는 만큼 보이니까..  오히려 탁월한 아이디어를 가진 경제학자들일수록 수학을 통해 그 아이디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는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 난 되려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일단 톱저널들을 찬찬히 읽어보고 논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그런 비판 못할거다.)
그럼 이런 수학적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 이면에 담긴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과 소통해야 하는게 아니냐, 한다면, 역시 "필요한 사람들이 필요한만큼 하겠지"가 내 생각이다.  누군가 학문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한다면, 그 사람은 그걸 학자들의 언어가 아닌 쉬운 언어로 바꿔야 할거다.  근데 그게 모든 학자들의 의무는 아닌 것 같다.  학자는 그냥 공부를 하고 싶어서 그걸 업으로 삼은 사람일 수도 있고, 지식을 권력으로 이용하고 싶어할 수도 있고, 지식을 통해 존경받고 싶어할 수도 있고, 연구를 하되, 목적이 다 같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크루그먼은 연구활동은 몹시 게으르면서도 사회와 소통하는데는 열심이고, 맨큐는 학부 일반교양 수준에서 경제학적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있는 교과서를 썼지만, 모든 경제학자가 그렇게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는거 아닌가.

고민상담 & 역공 miscellany

Q: 언니, 고민이 있어요.  그냥 알고 지내던 앤데요, 사귀재요.  막 좋은건 아니지만 싫지도 않구요, 마침 혼자 타국에서 이러고 사는게 심심하고 외롭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귈까 해요.
A: 연애하면 인생 달라질것 같니?  잠깐 뽕맞는거야.  약발 떨어지면 인생 더 꼬일 수 있지.  맘은 식었다고 맘대로 깔끔하게 헤어지기 힘든게 연애란 말이지.
Q: 근데 얘랑은 깊이 빠질 것 같지 않으니까, 끝나더라도 쿨하게 끝낼 수 있을거 같아요..
A: 해피엔딩?!  동화 너무 많이 봤구나..  해피엔딩은 없어.  모든 엔딩은 해피하고는 백만광년쯤 떨여져 있다는게 현실.  miserable/heartbreaking 이게 엔딩의 속성인데 해피엔딩은 무슨..
Q: 흠..  그래도 요즘 너무 외롭거든요.  남자친구 있어야 할 것 같아요.
A: 둘이 좋아 사귀는 동안에는 항상 좋을것만 같지?!  혼자서도 달라지지 않는 인생이 둘이라고 달라질 리가 있겠냐?!  혼자인게 힘들면 둘이 되었을땐 두 배로 힘들어.. 

Q: (발끈) 언닛!!  언니 원래 성격이 그렇게 시니컬한거에요, 아님 공부하다가 그렇게 된거에요?!  지금 내가 문제가 아니라 언니가 더 문제네..  언니 진짜로 혼자 늙어갈거 같아요.
A: (ㅡㅡ;;  이래서 20대 초반 애들하고 연애문제로 말 섞는게 아니었는데..)  갑자기 할 말이 없네..  나 원래 좀 드라이했어.
Q: 그래두 언니 너무 연애에 대해 부정적인거 아녜요?
A: 아 내가 언제 걔랑 사귀지 말라고 했니?!  사귀고 싶음 그냥 사귀던가.  근데 현실은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샤바방하지 않다는 얘길 하는거야...  (이게 부정적인건가...?)

주정뱅이 유럽여행 miscellany

술과 여행을 좋아하는 캐나다 친구랑 메신저로 수다를 좀 떨었다.  내년 봄쯤에 바이바 할 예정이고, 바이바 끝나면 기념으로 술을 테마로 해서 두 달쯤 유럽 곳곳을 여행할거라고 한다.  어디로 갈거냐고 물었더니 보내준 파일..  노란색은 맥주, 파란색은 위스키, 빨간색은 보드카, 보라색은 와인, 핑크색은 사이다.  갑자기 지도를 보니 나도 가고 싶어졌다.  이 친구는 두 달도 짧다는거다.  원래는 1년쯤 돌아다니면서 제철 술 (술도 제철이 있다고 생각하는 애주가임) 마셔봐야 하는데, 그러기엔 돈이 없으니까, 그냥 두 달만..

재미있는건, 이 친구 미생물 전공인데, 학위논문이 발효에 관한 내용이다.  근데 술이 대표적인 발효식품 아닌가.  발효 관련한 연구로 박사논문 심사 마치고 기념으로 유럽 술 여행이라니..  더 재미있는건 이 친구 술 테마 여행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박사과정 시작하기 전에 일본에서 영어강사 생활을 좀 했었는데, 그때 아시아 술 테마여행 했었고, 그때 한국에도 갔었다는군.  일본을 거쳐 한국, 중국 극동 3국 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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