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팔이와 정보비대칭 */

"맞을래요?"에서 트랙백


요즘 한국에서는 용팔이 사건으로 시끄러운 것 같다.  이글루에서도, 포털에서도 용팔이들에 대한 성토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동안 판매자보다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들이 얼마나 당해왔었던가를 금방 알 수 있다.  용산 전자상가라는 시장은 기계치인 내가 범접하기 힘든 세상이었고, 가본 적도 별로 없어놔서, 사실 용팔이들이 어떤 상인들인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만, 경제학적 시장과 협상의 관점에서 용팔이 사건은 나에게 제법 흥미롭다.

두 명이 협상게임(bargaining game)을 진행한다고 생각해보자.  각각의 게임 참여자는 한 번씩 번갈아가며 적당한 가격을 제시하고, 두 명이 모두 동의하는 수준에서 협상은 이루어진다.  두 사람이 가져가는 몫의 합이 일정하다고 할 때 (s.t. X1+X2=1), 이 게임에는 무수히 많은 내쉬균형(양쪽이 모두 다른 행동을 취할 유인이 없는 상태)이 존재한다.  즉, 양쪽이 즉시 동의하는 특정 수준을 X*라고 할 때, X1=X*, X2=1-X*인 모든 조합은 다 내쉬균형상태이고, 이러한 균형상태에서 양쪽 게임 참여자 모두는 최적효용상태(Pareto efficient allocation)에 도달한다.  단, 두 게임 참여자가 동일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
게임에 참여하는 양쪽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다르다면 어떨까?  경제학에서 정보 비대칭의 문제를 다룰 때는, 베이지안 균형(Bayesian equilibirum)의 개념을 도입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불완전한 정보(상대가 가진 정보를 나는 갖지 못한 경우)에 대해 확률적으로 추측하는 사전확률(prior probability)을 이용하여 상대의 최적행동을 추측하고, 관찰된 상대의 결정에 따라 그 불완전한 정보를 베이즈 규칙(Bayes rule)을 통해 업데이트한다.

정보비대칭의 문제는 상인과 고객사이의 거래에서 흔히 일어난다.  물건을 팔려고 하는 상인은 그 물건의 정확한 시장가격(p)을 알고 있으나, 고객은 그렇지 않다.  고객은 가격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그 물건에 대한 주관적인 가치(v)를 갖고 있다.  상인과 고객 사이의 정보비대칭은, 상인은 가격을 알고 있으나 고객의 주관적 가치를 모르며, 고객은 주관적 가치를 갖고 있으나 가격을 모른다는 상황으로 요약이 가능하겠다.  정보 비대칭 하에서의 협상게임에서, 고객은 가격이 가치보다 낮거나 같아야 살 것이고(즉, p≤v), 상인은 가격이 가치보다 같거나 높아야 이윤을 남긴다(즉, p≥v).  둘 사이의 내쉬균형은 p=v인 어떤 가격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와, 아예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된다.

용산 전자상가의 역사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트랙백 해온 원 글을 보고 알았다.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니, 적어도 15년은 되었지 싶은데, 과거 용팔이들이 이윤을 크게 남길 수 있었던 이유가 정보비대칭에 있다.  고객이 가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밀집된 유사한 상가들끼리 가격담합이 강하게 이루어졌기에 충분히 가능했다.  상도덕을 이야기하며, 그 때의 폭리를 취하던 것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하는데, 경제적으로는 지극히 합리적인 행위라고 이해한다.  (그렇다고 그게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거래의 매커니즘에 비추어볼 때, 상대의 정보비대칭을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합리적인 행위라는 뜻이다.  강조하지만, 합리적 행위라는 말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용산 전자상가의 호황기였던 과거에 그들의 이윤의 근거가 카르텔과 정보비대칭에 있었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정보비대칭이 사라지게 되면, 그들이 누리던 과점이익도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확산과, 특히 가격비교사이트의 등장은 시장의 형태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완전경쟁시장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다수의 판매자와 모든 시장참여자에게 동일한 정보가 충족되면서, 시장의 형태는 완전경쟁시장적 성격을 띄기 시작한다.  완전경쟁시장에서는 모든 소비자에게 가격정보가 공개되어 있으므로, 소비자는 동일 상품에 대해 낮은 가격을 선택하고, 다수의 판매자는 더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가격경쟁을 벌인다.  용산 전자상가라는 카르텔도 끝장을 봤단 얘기다.  궁극적으로 완전경쟁시장에서 가격은 그 재화 한 단위의 비용과 같아져서(p=MC, marginal cost) 판매자의 이익은 0가 되지만, 소비자 잉여는 최대가 된다.  사회 전체적인 후생(welfare)의 관점에서 완전경쟁시장은 과점시장보다 더 효용이 크다.  경제학의 일반균형이론에서 늘 말하듯, 경쟁은 사회적 최적 효용상태(Pareto efficiency)에 도달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인거다.
시장은 변했고, 정보는 모든 이들에게 공개되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잔인하게 용팔이들을 혁신으로 몰아부치고 있다.  판매자들에게는 냉혹한 완전경쟁시장이라는 현실은 바뀌지 않으니, 이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에게 전자제품의 판매 외에 다른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터넷 가격비교사이트에서 공개된 가격 이상으로 모든 정보를 동일하게 알고 있는 소비자와의 협상에서 동의를 이끌어내기란 '맞으실래요?' 식의 협박같은 무리수 말고는 불가능할테니..  그런데 이런 식의 협상에 기꺼이 응해줄 소비자가 있으려나 모르겠다만.

by 너구리 | 2007/05/31 06:44 | economics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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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eibark at 2007/05/31 13:22
호오, 그런 관점에서 파악할 수도 있군요. 잘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너구리 at 2007/06/01 02:47
네. Bargaining game과 정보비대칭이 연결된 사례지요.
Commented at 2007/06/0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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