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도 집에서 뭉갰는데, 이번주도 주말에는 집에서 쉬어야 할 듯. 아직 기침은 좀 심하지만 열은 많이 내린 듯 싶고, 구토증상은 사라졌다. 감기엔 치킨숩을 먹어야 한다면서 플메가 아침부터 치킨숩 사왔다. 입맛은 없지만 고마워서 다 먹었다. 병원에 가야하나 고민 좀 해봤는데, 갔다가 신종플루라면 며칠간 격리될까봐 그냥 집에 처박혀 있기로 했다. 혹시나 모르니 사람들과의 접촉을 삼가고 있는 중이다. cutting the links and being isolated.. (그럼에도 플메 둘이 나로 인해 감염된다면, 매일 출근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이들을 통해 전염병은 계속 퍼질테니, 나 혼자 링크 끊고 집에 처박혀 있는다고 괜찮은건 아니다.. 원칙대로라면 병원가서 격리당해야.. ㅡㅡ;;)
어제도 일하고, 오늘도 집에서 공부.. 어제까지 한 일은 아이디어를 가장 간단한 케이스에 놓고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분석해보는, 일반화된 이론을 만들기 전단계까지, 해놓은걸 쭈욱 정리했다. 모델을 설정하고 수식을 가다듬어 증명을 완성하고, 이 모든걸 정리하고 나면 이제 남은건 이걸 일반화하는 것 뿐이니까, 논문에 한 절반은 했다고 봐야지. 프로세스를 정량화하긴 힘들지만, homo-schedulicus로서 일의 진척을 점검하고 얼마나 남았는지는 본능적으로 계산해보게 된다.
매번 선생이랑 미팅할때마다 들고가서 하는 얘기가 여기까지는 중구난방 좀 산만했는데, 지금까지 나온걸 정리하라고 한건 안선생 편의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근데 어제 정리하면서 생각해보니, 오히려 이건 나 스스로에게 더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모든 아이디어와 proposition, proof는 내 머리속에, 노트 여기저기에 다 있지만, 그걸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묶어서 스토리로 엮다보니 전체적인 그림이 더욱 확실해진다. 그래서인지 정 안가는 프로젝트에 약간의 애정이 생기는 것 같다.
주말동안 읽고 공부하려고 챙겨온건, 지난 15년간 이루어진 auction 관련 연구다. 지금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떠오른게 5월쯤이고, 그때부터 시작해서 여름 내내 본격적으로 auction에 대한 공부를 했고, 물론 mechanism design과 social choice theory까지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봄, 여름, 가을 세 시즌 내내 이 주제를 중심으로 공부를 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읽으려고 챙겨온 논문들은 딱 지금 프로젝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연구들로만 엄선해서 다섯 편. 개별 행위자의 집단적 의사결정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매커니즘 디자인으로 연결되었고, 그 중에서도 인센티브의 핵심인 거래행위(=auction) 디자인에 대한 공부는 필수적이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관련된 이론의 줄기를 전부 훑어 공부하는데 세 시즌이 흘러버렸고, 그 결과로 지금 진행중인 프로젝트 literature review를 위해 요약중인 논문 다섯 편.. 쉽게 쓰여지는 논문은 없다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조금 든다. 공부는 무진장 비효율적으로 했으면서 정작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공부는 좀 그렇다. 얄팍하게 하면 티가 난다. 파이낸스 공부하며 종종 내게 통계적 방법론에 대해 물어보곤 하는 사람이 있다. 매번 논문을 쓸때마다 이번에는 패널, 이번에는 서바이벌, 이번에는 비모수, etc. 분석 방법은 달라진다. 그럼 관련 이론을 아주 필요한 최소한만큼만 공부하는데, 그러면서도 정작 데이터의 수학적 성격이나 기초적인 확률론은 모른다. 박사를 마치기까지, 논문 세 편의 통계적 방법론은 다 다르지만, 확률론의 기초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이도 있다. (겁나 많다) 안타깝지만, 그런 티는 감추기 어렵다. 논문에서도 별로 깊이가 없고 얘기하면서도 다 드러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ㅡㅡ;; 세 시즌을 훌쩍 보내버린 시간적 허탈감을 조금 달래본다. 그냥.. 갈수록 좀 나아지지 않을까....? 이번엔 세 시즌이었지만, 다음번엔 반년, 그 다음번엔 두어달.. 뭐 이런 식으로... 아님 말구...
공부할게 많다는건 역시 아주 효과적인 mental immunization이다. 미친듯 심란했던게 생각해보니 딱 1주일 전인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어허허허, 떨어진 낙엽처럼 바싹바싹 말라있는 감수성을 드라이어질로 아예 말려버리는게 바로 공부란 말이지. 감수성 풍부한 문학 이런거 공부하는 사람들도 그럴까?
언어가 의식을 지배한다는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에는 나(I) 외에 상대는 너(YOU)일 뿐이다. 그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you, 선생이라도 you, 부모에게도 you.. 상대를 지칭할때 위계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정보 없이 그냥 대상 자체만을 의미하는 you다. 그래서인지 더 인격적으로 동등하다는 생각이 드는건, 한국에서는 감히 선생 이름을 부른다는건 생각도 못할만큼 선생과 학생은 위계가 분명하고 넘어서기 힘든 갭이 존재했다. 근데 여기서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자기 선생은 도달하기 힘들만큼 굉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한국 학생들이 수줍음 많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이런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선생과 학생의 엄격한 위계질서 하에서 상명하복과 존경이 교육 전 과정을 통해 뼈속까지 스며들었는데, 아무리 여기서야 I/you 관계로 지낸다 한들 의식 깊은 곳에서는 스스로 동등하게 여기지 못하는거다. 한국에서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이었을수록 더 그렇다.
어제도 일하고, 오늘도 집에서 공부.. 어제까지 한 일은 아이디어를 가장 간단한 케이스에 놓고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분석해보는, 일반화된 이론을 만들기 전단계까지, 해놓은걸 쭈욱 정리했다. 모델을 설정하고 수식을 가다듬어 증명을 완성하고, 이 모든걸 정리하고 나면 이제 남은건 이걸 일반화하는 것 뿐이니까, 논문에 한 절반은 했다고 봐야지. 프로세스를 정량화하긴 힘들지만, homo-schedulicus로서 일의 진척을 점검하고 얼마나 남았는지는 본능적으로 계산해보게 된다.
매번 선생이랑 미팅할때마다 들고가서 하는 얘기가 여기까지는 중구난방 좀 산만했는데, 지금까지 나온걸 정리하라고 한건 안선생 편의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근데 어제 정리하면서 생각해보니, 오히려 이건 나 스스로에게 더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모든 아이디어와 proposition, proof는 내 머리속에, 노트 여기저기에 다 있지만, 그걸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묶어서 스토리로 엮다보니 전체적인 그림이 더욱 확실해진다. 그래서인지 정 안가는 프로젝트에 약간의 애정이 생기는 것 같다.
주말동안 읽고 공부하려고 챙겨온건, 지난 15년간 이루어진 auction 관련 연구다. 지금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떠오른게 5월쯤이고, 그때부터 시작해서 여름 내내 본격적으로 auction에 대한 공부를 했고, 물론 mechanism design과 social choice theory까지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봄, 여름, 가을 세 시즌 내내 이 주제를 중심으로 공부를 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읽으려고 챙겨온 논문들은 딱 지금 프로젝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연구들로만 엄선해서 다섯 편. 개별 행위자의 집단적 의사결정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매커니즘 디자인으로 연결되었고, 그 중에서도 인센티브의 핵심인 거래행위(=auction) 디자인에 대한 공부는 필수적이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관련된 이론의 줄기를 전부 훑어 공부하는데 세 시즌이 흘러버렸고, 그 결과로 지금 진행중인 프로젝트 literature review를 위해 요약중인 논문 다섯 편.. 쉽게 쓰여지는 논문은 없다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조금 든다. 공부는 무진장 비효율적으로 했으면서 정작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공부는 좀 그렇다. 얄팍하게 하면 티가 난다. 파이낸스 공부하며 종종 내게 통계적 방법론에 대해 물어보곤 하는 사람이 있다. 매번 논문을 쓸때마다 이번에는 패널, 이번에는 서바이벌, 이번에는 비모수, etc. 분석 방법은 달라진다. 그럼 관련 이론을 아주 필요한 최소한만큼만 공부하는데, 그러면서도 정작 데이터의 수학적 성격이나 기초적인 확률론은 모른다. 박사를 마치기까지, 논문 세 편의 통계적 방법론은 다 다르지만, 확률론의 기초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이도 있다. (겁나 많다) 안타깝지만, 그런 티는 감추기 어렵다. 논문에서도 별로 깊이가 없고 얘기하면서도 다 드러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ㅡㅡ;; 세 시즌을 훌쩍 보내버린 시간적 허탈감을 조금 달래본다. 그냥.. 갈수록 좀 나아지지 않을까....? 이번엔 세 시즌이었지만, 다음번엔 반년, 그 다음번엔 두어달.. 뭐 이런 식으로... 아님 말구...
공부할게 많다는건 역시 아주 효과적인 mental immunization이다. 미친듯 심란했던게 생각해보니 딱 1주일 전인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어허허허, 떨어진 낙엽처럼 바싹바싹 말라있는 감수성을 드라이어질로 아예 말려버리는게 바로 공부란 말이지. 감수성 풍부한 문학 이런거 공부하는 사람들도 그럴까?
언어가 의식을 지배한다는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에는 나(I) 외에 상대는 너(YOU)일 뿐이다. 그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you, 선생이라도 you, 부모에게도 you.. 상대를 지칭할때 위계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정보 없이 그냥 대상 자체만을 의미하는 you다. 그래서인지 더 인격적으로 동등하다는 생각이 드는건, 한국에서는 감히 선생 이름을 부른다는건 생각도 못할만큼 선생과 학생은 위계가 분명하고 넘어서기 힘든 갭이 존재했다. 근데 여기서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자기 선생은 도달하기 힘들만큼 굉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한국 학생들이 수줍음 많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이런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선생과 학생의 엄격한 위계질서 하에서 상명하복과 존경이 교육 전 과정을 통해 뼈속까지 스며들었는데, 아무리 여기서야 I/you 관계로 지낸다 한들 의식 깊은 곳에서는 스스로 동등하게 여기지 못하는거다. 한국에서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이었을수록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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